예수님은 마지막 감람산 강화에서 개인과 역사의 확실하고 분명한 종말을 예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우주적 종말을 예언했습니다(마24장). 그리고 그 종말의 대비책을 비유로 교훈했습니다(마25장). 오늘 우리가 받은 본문은 모든 인류가 알 수 없도록 감추어져 있는 예수님의 재림시기 앞에 두 사람, 두 세계의 삶과 종말의 분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두 사람’은
一. ‘그때에 두 사람’은 공존공생하며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라고 했습니다. 모든 경우 직장, 노동 등 생존 전선에 함께 공존공생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사는 세상을 뜻합니다. 우리가 사는 두 세계는 공존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조건하에서 같은 일을 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나 불신자가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닌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세상 끝나는 그 날까지 두 세계는 공존공생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二. ‘그 때에 두 사람’은 분리되고 만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 가운데서 중대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1. 그때 공존공생의 삶에는 끝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유한이란 말입니다. 여기 ‘그 때’는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가리킵니다. 이때가 바로 공존공생하는 시간이 끝나는 날입니다. 말하자면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사는 시간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세계는 ‘그 때’, ‘그 날’, ‘그 시간’을 향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2. ‘그 때에 두 사람’은 분리되고 만다고 했습니다. 곧 ‘한 사람은 데려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이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데려감’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예비 된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잠자던 무덤에서 일어나 생존자들의 변화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을 가리킵니다(살전4:16,17). 여기 ‘버려둠’은 문이 닫혀 혼인잔치에 들어갈 기회를 놓쳐 버린 자의 경우입니다. 결국 부활하여 심판을 받고 영벌에 들어감을 뜻합니다(요5:28,29). 3. 그때의 분리 기준은 예수 십자가 신앙과 불신앙이라는 뜻입니다(고전1:18). 예수님이 가르치신 확실한 진리는 믿는 자는 영생, 믿지 않는 사람은 영벌이라는 것입니다. 곧 아들(예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불신자에게는 멸망이라는 것입니다(요3:16,18). 이것은 사실상 기독교의 요체입니다. 두 사람 중 버려둠을 당한 것은 저들이 예수를 믿지 안했다는 단 한가지 이유뿐입니다. 4. ‘그 때에 두 사람’은 삶의 목적이 달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생(生), 같은 장소, 시간을 받았습니다. 같은 재능과 노동력을 부여받고 같이 일했습니다. 그러므로 밭에서 일하고 집안에서 매를 돌리는 것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축복입니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문화생활이 죄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 모든 일의 목적과 의의와 내용과 방향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인생에게 주어진 온갖 류의 생존 방식 그 자체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주를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밭을 갈고 메를 돌렸지만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자기를 위하여 밭을 갈고 메를 돌렸습니다. 실로 신자들은 몸은 밭에 있고 손은 맷돌을 붙잡고 있어도 그 모든 목적과 내용은 주를 위함에 있습니다. 같은 일에 함께 하면서도 다른 한편의 사람은 정반대의 목적을 갖고 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용적 차별의 삶입니다. 목적적 다른 삶의 모습니다. 5. ‘그때에 두 사람’의 결국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성경은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당하는 ‘그때의 사건’은 전혀 두 사람 자신들의 주장함이 아니라도 했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은 전혀 피동적으로 ‘당하고’만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그리고 지연시킬 수도 없는 당함입니다. 그 때 역사의 현장에 나타나신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유의 주요 대주재이십니다. 자신의 약속대로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실 분입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마3: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과거에도 확실하고, 현재도, 미래에도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미래인 종말과 역사의 미래인 우주의 종말에 대해서 너무나도 확고부동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영존하고 자신이 전지하고 자신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신 말과 행동에 대하여 자신이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저주 받은 전 자연계에 이변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거짓 그리스도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하에서도 세계적인 복음운동의 종말 선교가 땅 끝까지 전개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는 ‘그때에 두 사람’중에 속해 있습니다. 개인과 역사는 멈추지 않고 ‘그날 그 때’를 향하여 진행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탁은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43).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삶이 곧 독경, 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 생활에서의 예배체험, 힘쓰는 기도, 전도와 찬미와 감사생활로 펼쳐가는 기쁨의 삶입니다. 현재보다 1,000배나 더하는 축복의 미래를 가져오는 삶의 비결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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